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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작성자 : 도우리 (다시함께상담센터)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모 배달 앱 회사의 광고 카피라이팅이다. 하지만 대답은 다양할 수 있겠다. 요즘 코로나 19 시국에서 ‘방역의 민족’이라고 할 수도, ‘k-pop의 민족’이라고 할 수도, 아니면 아예 질문을 뒤집어 혈연주의를 강조하는 한민족주의 자체가 문제라고도 답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얼마 전 인터넷 감시단 불법성산업 모니터링을 하던 중 또 다른 대답을 발견했다. ‘유흥의 민족’이 그것이다. ‘No.1 유흥업소 사이트’를 표방하는 성매매알선 포털사이트의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유흥의 민족’이라는 워딩, 그리고 ‘배x의 민족’ 업체 광고를 그대로 차용해 ‘⑲’라는 문구를 배달 물품으로 실어 나르는 배너 이미지 모두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간 우리 사회에서의 성 문화, 성인지 감수성을 떠올려 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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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시각으로 변질되어 구성된 유흥

‘유흥’이라는 단어부터 그렇다. 유흥(遊興)의 본뜻은 ‘흥겹게 논다’이지만, 대부분 성매매 업계를 칭한다는 점은 포털사이트에 ‘유흥’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들과 게시물을 굳이 찾지 않아도 주지의 사실이다. 게다가 ‘착한’ 몸매라는 표현부터 ‘야한 동영상’이라고 불리는 불법 촬영물, ‘성인들의 천국’이라는 불법 촬영물 사이트, 성매매 업소라는 뜻으로 변질된 ‘힐링’ 마사지 업소, ‘천사 서비스(성매매 여성 여럿이 성매수 남성을 서비스하는 것)’, 황제 의자(항문 애무 서비스를 병행하는 의자)‘ 까지…. 성매매 업소와 성매수 남성 사이에서 쓰이는 유흥 은어들은 모두 철저히 남성의 시각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자문위원이 지난 2010년 발간한 저서 <상상력에 권력을> 중 ‘나의 서울 유흥문화 답사기’ 편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에게 룸살롱과 나이트클럽, 클럽으로 이어지는 일단의 유흥은 궁극적으로 여성과의 잠자리를 최종적인 목표로 하거나 전제한다 … 그러니 이러한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 아름다운 대한민국, 아름다운 서울 ··· 8만 원에서 몇백만 원까지 종목과 코스는 실로 다양하고, 그 안에 여성들은 노골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진열되어 스스로 팔거나 팔리고 있다”라고 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매매 업소가 아닌 ‘일반’ 유흥업소는 문제가 없을까. 얼마 전 문제가 되었던 버닝썬 게이트 사건은 ‘청춘 문화’로 알려진 클럽이 성추행, 조직적인 성매매, 약물을 이용한 강간까지 실질적으로 여성 착취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대부분의 클럽에서 여성에게 무료입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여성을 ‘입뺀(입구 뺀지)’하지 않는 기준이 ‘노출이 있는 옷차림’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는 결국 일상적인 성 문화, 섹슈얼리티는 남녀 이분법 및 그에 기반한 성별 위계 위에 구성된 탓이다. 전 수행비서 김지은 씨에게 고발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폭력에 대해 ‘연애’라고 했던 것, 호기심과 쾌락을 이유로 여성들을 집단적으로 착취한 ‘n번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여성 전반을 배제하는 민족 개념

유흥의 ‘민족’이라는 말은 어떤가? ‘민족(nation)’은 근대에 탄생한 개념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식민지하에서 왕정이 무너진 뒤 독립운동의 맥락에서 중심 개념으로 쓰이며 ‘단일한 민족 공동체’로 상상돼왔다. 그 결과 이주민, 난민 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이데올로기로도 작동해왔다. 나아가 ‘유흥의 민족’을 통해, 이 민족 개념에는 ‘여성’ 전반을 배제한다는 속내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민족은, ‘한민족’에 대한 환상을 강화하고 주입하는 국가와 밀접하게 상호작용해왔다. 그리고 그 국가는 때에 따라 포주 역할을 했다고 할 만큼 적극적으로 성매매 산업을 조성․장려했다. 1945년 미군이 주둔하면서 조성된 기지촌을 관리했던 사례, 1962년 법무부, 내무부, 보건사회부가 공동지침을 통해 성매매 단속을 하지 않는 지역을 지정한 역사가 대표적이다. 또 ‘자발적 성매매’와 ‘비자발적 성매매’의 좁은 이분법으로 여성 착취의 구조적 폭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거나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등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내려진 법원 판결들, 저출산 대책으로 기획된 ‘가임기 여성지도’ 등이 지금의 성매매 및 성 문화에 일조해 왔다.




다시 질문해야 할 '유흥의 민족'

결국 '유흥의 민족'은 현실의 집약이다. 우리 사회의 섹슈얼리티는 가부장제 본위로 구성돼 있다는 것. ‘흥겹게 논다’라고 했을 때 흥겹게 노는 자와, 그 흥겨움을 이유로 착취당하는 자는 누구인가?‘창녀’라는 낙인으로 ‘성매매 여성은 강간당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 성매매 업소가 있어야 성폭력이 줄어든다고 말하는 이들, 여성이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말하는 유흥은 무엇일까? 그렇게 해서 ‘단합, 비즈니스’가 되고 ‘본능 해소’가 된다는 쾌락이란 무엇일까? 나아가 그렇게 해서 유지되는 ‘민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계속 다시 물어야 한다. “유흥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