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함께상담센터는 다양한 성매매방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피고,리다

완월동 여자들

(살아남아 사람을 살리는 여성 연대의 기록)을 읽고


감시사업팀 이은정




첫만남은 새로웠다.졸업하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되는 건 아니라는 성매매방지활동가 면접 자리였다. 수 많은 활동가들 사이에서 굳이 내 이름을 ‘언탱’이라고 불렀던 갱상도 거제출신의 소장님이셨다. 이 책의 저자인 갱숙언니(정경숙), 그녀에겐 부채감이 있다. 함께 일하다가, 서울가서 ‘비단 구두’ 사서 ‘돌아오라’고 미션을 주셨건만 나는 다시 부산에 돌아가지 않았고, 서울에 눌러앉았다. 하지만 늘 그랬듯 성매매방지 활동가라는 꼬리표는 떼지 않았으니, 여전히 우린 동지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다.


완월동과의 인연이 떠올랐다.완월동은 사실, 역사적으로는 살아있으되 행정구역으로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부산지역의 현재 충무동, 초장동 인근의 성매매집결지를 대표하는 이름의 완.월.동. 그 공간에서 활동하던 시절, 달이 꽉 찬 동네, 완월의 낭만‘화’는 그 시절 그 공간을 살아내는 언니들에게는 참 의미 없는 일이다. 우울하고 음울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 안에는 생동하는 숨과 고통의 한숨이 공존했다. 신입 성매매방지 활동가로서 많은 고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완월동 언니들이 나를 많이 ‘봐’주었기 때문인데, 당시 고령 성매매피해여성들을 다수 담당했던 나로서는 삶의 경험이나 ‘라떼’류의 주옥같은 서사들을 많이 반추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완월동 여자들의 뒷배는 항상 든든했다.완월동 여자들의 저자인 갱숙언니는 가끔 당시 소장실에서 제일 가까웠던 내 책상에 와서 “또 소핑(사투리라 쇼핑 발음이 안되는건 아닐까) 하는 거에요? 언탱, 언니들 상담은 다 했어요? ” 라며 관심(?)을 표현했고, 개념 없는 활동가였던 언탱(나)은 “다 했거(던)요” 하면서 소핑을 계속했다는 후일담이 있다. (이런 황당한 태도는 직장생활 3개월차 정도에 일어난 일이라고, 그 이후에는 정신 차렸다고 강조하고 싶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당시 완월동 언니들을 만나면서 엄청난 뒷배를 얻은 탓에 다소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이제와서 사과, 드린다. (소핑은 집에서, 상담일지는 주말에!)


완월동 언니와 신나게 놀고 싶었다.특히 이 책에 수록(125p 참조)된 <언니야 놀자> 문화행사는 나에게도 가장 의미있는 행사였다. 입사한지 얼마 안되어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는데, 완월동 언니들과 한판 놀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작당 무리들이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에 있었다. 당연히 행사 전에 완월동 언니들과 만나면서, 신나게 놀 생각을 하며 언니들과 수다를 떨었었는데, 하루 휴가도 내었다고 하면서 함께 들뜨며 기다렸던 시간들이었다. 당시 나는 참여형 전시 부스를 준비하였는데, 완월동 입구에 띠를 이어 우리를 막아선 동네 주민들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언니들이 숙소 내 닫힌 커튼 뒤로 그날의 약속을 떠올렸을 생각을 하니 더 먹먹하였다. 그때, 그시간, <언니야 놀자>가 무산된 현장에 ‘완월동 여자들’은 숨죽인 채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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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야 놀자> 홍보포스터와 행사진입 시도사진 (오마이뉴스, 05.05.29)



완월동 언니들이 아니라, 완월동 여자들이다.이는 완월동을 살아온 사람들이 비단 완월동 언니들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인데, 그 공간내 많은 일상들을 ‘서글픈’ 공간이 아닌 ‘살리는’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노력 때문이 아닐까. 하여, 저자인 정경숙 소장은 그때 그 공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때로는 부끄럽고, 다소 찬란했던 기록을 꾹꾹 눌러쓰지 않았을까.


완월의 공간이 어떻게 재생될지 많은 기대가 있다.최근 서울지역내에서도 성매매집결지 해체의 움직임이 있고, 그 해체의 근간에는 성매매피해여성들의 인권과 해당 지역의 특수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부산지역 완월동을 근거지로 활동해왔던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이 꾸준히 완월동 그 후의 ‘살림’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공간을 잘 살아낸 ‘사람’들 사이를 잇는 정성에 있다. 그 정성과 ‘서로 삶’의 의미가 담겨진 숨쉬는 책,을 진심으로 권한다.